Santa Maria in Turri, 로마, 바티칸 시국의 중세 교회
산타 마리아 인 투리는 고대 성 베드로 대성당 아트리움의 외벽에 붙어 입구 왼쪽에 있던 작은 교회였습니다. 정면은 그 외벽과 일치했고 청동 문이 있었습니다. 입구 위 모자이크에는 구름 속에서 천사들에게 둘러싸여 올라가시는 그리스도와 그 아래 열두 사도가 있었고, 그 밑에 "Christe tibi sit honor Paulus quod decorat opus"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1450년경 입구 위에 교황 니콜라오 5세의 이름이 추가되었습니다.
산타 마리아 인 투리는 교황 스테파노 2세(752–757)가 세운 종탑 아래의 사각 구조물에서 비롯되었다. 교황 바오로 1세(757–767)는 파사드를 승천 모자이크로 장식하고 ‘Christe tibi sit honor Paulus quod decorat opus’라고 새겼다. 1155년 6월 8일 하드리아노 4세가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프리드리히 바르바로사를 대관했고, 왕은 이 교회에서 충성 서약을 했다. 1167년 바르바로사의 군대가 교회를 불태웠고(penitus combusta et dissipata), 새 대성당을 위해 철거되었다.
이 교회는 주변에서 열린 행렬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부활절 전 주일의 종려 행렬과 성모 봉헌 축일의 촛불 행렬이 이곳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안테 살바토렘'이라는 다른 이름은 인근의 구세주 성화를 가리켰으며, 그것은 1167년 화재까지 대성당에 보관된 베로니카 성화의 사본이었습니다.
교회는 성 베드로 대성당 바깥뜰 입구 근처의 전략적인 위치에 있었습니다. 건물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므로, 방문객들은 이전 부지를 탐험하고 신성한 지역의 역사적 배치에서의 역할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파사드 모자이크는 교황 바오로 1세(757–767)가 의뢰했으며, 그 봉헌 문구 "Christe tibi sit honor Paulus quod decorat opus"가 그림 아래에 전해진다. 승천 장면은 그리스도가 큰 구름 속에서 천사들에게 둘러싸여 올라가고 아래에 열두 사도가 모여 있는 모습으로, 바오로 1세가 산 클레멘테 하층 교회에도 만들게 한 모자이크와 같은 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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