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ustavia, 독일 멘히구트 반도에 있는 고고학 유적지
구스타비아는 1806년 뤼겐섬 남동부 해안, 그로스치커 서쪽에서 착공된 미완성 스웨덴 항구 도시의 터입니다. 지상에는 거의 남은 것이 없으며, 눈에 보이는 유구는 침엽수 판재 길이 7.2미터로 만든 돌 채운 나무 상자 두 개로, 6.4미터 간격을 두고 칙커셰스 회프트 반도 앞 약 3미터 수심에 놓여 있습니다.
구스타비아는 1806년부터 치커제 호숫가에 계획된 스웨덴 항구 도시로, 보이에와 그리펜베리 장교는 이 만이 300~400척의 배를 수용할 수 있다고 보고했습니다. 구스타프 4세 아돌프 왕은 1806년 9월 11일 건설을 명령해 조선소, 선거, 항해 학교, 30여 채의 건물이 예정되었습니다. 1807년 프랑스군이 뤼겐섬을 점령해 시설을 파괴했고 스웨덴은 계획을 포기했으며, 1815년 스웨덴령 포메라니아를 넘겨받은 프로이센도 재개하지 않았습니다.
이 이름은 1806년 9월 11일 항구 건설을 명한 구스타프 4세 아돌프 왕을 기린 것이다. 마을은 교역용 쾨핑으로도 계획되었다. 장교 보예와 그리펜베리는 그해 여름 치커제를 측량해 300~400척을 수용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카리브해에도 같은 이름이 남아 있다. 1785~1877년 스웨덴 식민지였던 생바르텔레미의 구스타비아는 구스타프 3세의 이름을 딴 것이다.
유적은 묀히구트 반도 그로스치커 서쪽, 치커제 호수 근처에 있습니다. 1995년 발견은 항공 사진 조사로 이루어졌으며, 나무와 돌로 된 상자는 치커셰스 회프트 반도 앞 약 3미터 수심에 있어 육지에서는 보이지 않습니다. 이 만은 바람을 피할 수 있는 겨울 정박지로 쓰였습니다.
1995년 항공 탐사로 치커셰스 회프트 반도 앞바다에서 나무 상자 두 개가 발견되었다. 잠수 조사 결과 길이 7.2미터의 소나무 판재를 돌로 채워 6.4미터 간격으로 놓은 구조물로 확인되었다. 연륜연대 측정으로 목재는 19세기 초 스웨덴 통치 말기의 것으로 밝혀졌다. 프랑스군 철수 후 1813년경 세운 상륙용 다리의 유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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