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âteau de Fayenbois, 벨기에 쥐피유쉬르뫼즈에 있는 르네상스 양식의 성.
샤토 드 파이엥부아는 1625년 마스 양식으로 지어진 성의 현존하는 영주 거처로, 붉은 벽돌에 수평 석회암 띠를 두르고 약 22.5×13.5미터의 직사각형 평면을 가집니다. 육각 첨탑이 있는 원형 벽돌 탑에 출입문이 있고, 1830년의 고정 다리가 메워진 해자를 가로지릅니다. 가파른 슬레이트 지붕에는 지붕창과 가느다란 모서리 탑이 있습니다.
1619년 리에주 주교후 페르디난트 폰 바이에른은 로마에서 돌아온 기욤 파이엥에게 주피유, 벨레르, 퀴뒤부아 영주권을 넘겼고, 그는 1625년부터 쿠르티우스 궁전을 닮은 양식으로 성을 지어 자신의 이름을 붙였다. 이후 니볼라라 가(1681), 발타자르 가(1713), 판 데르 헤이던 데 빌사 가(1726), 드 로젠 가(1732), 드 티리아르 가(1818), 드 라 루셀리에르 가(1838), 세퓔클르 가로 이어졌다. 1971년 지붕이 부분적으로 무너졌고, 1972년 주피유가 100만 벨기에 프랑에 폐허를 사들였으며, 리에주가 1993년부터 2000년까지 복원했다.
파이엥부아라는 이름은 1619년 11월 18일 쥐피유, 벨레르, 퀴뒤부아의 영주권을 받아 성과 동네에 이름을 남긴 기욤 파이엥에서 비롯되었으며, 왈롱어로는 파이앵브웨라고 합니다. 입구 문은 육각 첨탑이 있는 원형 계단탑에 있고, 고전주의 양식의 문은 18세기 후반의 것입니다.
현재 이 성은 라 클레르 드 파이엥부아 요양원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일반에게 공개되지 않습니다. 방문객은 외부에서 건물을 구경하고 주변 부지를 산책할 수 있습니다.
1830년에 놓인 고정 다리는 메워진 해자 위의 도개교를 대체한 것으로, 그 평면은 1625년 이전에 이 자리에 있던 천수각을 지금도 떠올리게 합니다. 1830년 아메데 드 라 루셀리에르가 영국식 풍경 정원으로 조성한 공원에서는 두 개의 작은 다리가 퐁 드 올뢰 개울을 가로지르고, 거친 석회암 블록으로 만든 아치 위에는 신고딕 양식 예배당의 폐허가 놓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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